의자는 앉기 위해 만들어진다. 침대는 자기 위해 만들어진다. 옷은 입기 위해 만들어진다.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 꽃과 동물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많은 철학, 종교가 탄생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함에따라 종교의 힘은 점차 축소되고, 결국 남는 건 무의미다.
우리는 그냥 존재할 뿐이다. 본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의 경험에 관하여
나는 꽤나 창업에 관심이 많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세상을 더 개선하는 것이 나의 꿈, 최종목표이다.
그래서 이번 년도 초에 시작한 창업프로젝트에 앱 개발자이자 창업 멤버로 참여해서 3개월간 정말 밥 먹고 일만 할 정도로 일을 했다.
규모가 꽤나 컸음 에도, 팀원들이 열정적으로 임해 주었기에 프로덕트는 거의 런칭 직전이었다. 하지만, 정부지원프로그램 지원서에 팀원의 이름을 뺀 것, 사업계획서를 보여주지 않고 부당한 계약을 요구하여 프로젝트는 좌초되고 말았다.
더불어 저작권을 언급하며 블로그 글들을 다 지우라고 요구해왔다. 이러한 법적인 부분을 잘 몰랐기에 무료 법률상담까지 알아보며 정말 속이 타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이때 정말 화가 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나도 지치게 되었다. 이렇게 창업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하나, 이 꿈을 접으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는 데, 대학 교양 수업을 통해 마침 읽게 된 책이
노인과바다였다.
저녁에 기분전환용으로 짧게 읽어볼 생각으로 구매한 노인과 바다를 읽기 시작했는데, 몇 번이나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청새치와 고군분투하는 노인에게 너무나도 감정이입이 됐던 것이다. 노인이 청새치를 잡으려 노력하는 장면들, 계속해서 한번 더를 외치며, 청새치와 싸우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 밀려온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나 역시 나를 응원해주는 마놀린이 곁에 있다는 것, 끝까지 투쟁하는 노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어 다시한번 의지를 갖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었다.
사람은 파괴될지 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감동받은 경험들
이렇게 노인과 바다를 읽은 후 생각해보니 내가 영화나 책을 보고 “이거 참 명작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영화 중에는 어벤져스의 캡틴아메리카가 타노스의 수많은 무리들에 홀로 맞서는 장면, 최근에는 매드맥스의 퓨리오사가 고통뿐인 세상속에서 아무도 희망을 믿지 않을 때, 홀로 희망을 찾아 계속해서 도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경험들의 공통점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운명, 부조리에 대항한다는 점이다.
부조리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예측불가한 현상으로, 이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삶에 다가온다.
이러한 맥락에서 운명이라는 단어보다는 부조리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 도 없는,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에서는 상어가, 어벤져스에서는 타노스, 퓨리오사는 아포칼립스 세계관 자체가 부조리다.
하지만, 노인은, 캡틴은, 퓨리오사는, 이런 부조리에 대항해 자신의 신념을 갖고 맞서 싸운다.
앞서 소개한 인물들은 운명과 부조리에 대항한다는 공통된 선택을 했지만, 그 결과는 모두 달랐다. 노인은 상어에게 청새치를 빼앗겨 뼈만 남았고, 퓨리오사는 열심히 찾아간 고향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캡틴은 타노스를 물리쳤다.
그럼에도 나는 동일한 감정을 그들에게서 받을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왜 나는 감동받았는가
그렇다면 왜?
왜 나는 일면식도 없는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부조리에 대항하는 인물에게 감동을 받고, 그들처럼 되어야겠다 다짐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의 이유를 이기적 유전자와 사피엔스를 연결 지어 찾을 수 있었다.
불안에 관하여
대부분 이기적 유전자의 유전자에 꽂히기 마련이지만, 나는 안정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우리는 안정을 향해간다.
소금의 결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태양계 한가운데에 위치한 무지막지하게 큰,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먹여 살리는 태양조차도 수소보다는 헬륨으로, 점진적으로 자신만의 안정을 향해 나아간다.
이기적 유전자의 등장에 안정이 있었듯, 우리는 근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한다.
모든 생명체를 넘어서, 모든 물질이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현재 상태가 불안정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불안정은 인간에게 불안으로 다가온다.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
불안, 불안정을 이겨내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 실제로 안정 상태가 될 것
- 안정되었다고 믿을 것
우리는 결코 안정상태가 될 수 없다.
기술적으로는 물론이고, 안정상태가 된다고 한들, 그것보다 더 나은 안정상태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즉, 안정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지 혁명으로, 허구를 믿을 수 있다. (사피엔스)
강력한 의지
그렇다면 왜 그들에게서 감동을 느끼고, 매력을 느끼는가?
그들은 강력한 의지로,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죽음조차 불사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지킬 것이라는 의지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안정과도 같다.
나는 그들에게서 존경심은 물론, 안정을 느끼기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이다.
강력한 의지는 곧 안정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본질을 찾아낼 때다.
최후의 확정된 부조리
인생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써 가장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나는 죽는다 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상태의 안정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안정이라 믿을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즉 본질은 변하지 않을 강력한 의지를 찾아내는 것,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에 있다.
의지를 채우기
그렇다면 어떻게 의지를 찾아낼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자신에게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꼭 하나로 한정 지을 필요 없이 다양한 의미를 찾아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의지로 가득 채워진다.
그것이 목표든, 꿈이든, 가족이든, 사랑이든 아니면 진심으로 좋아하는 하나의 분야든.
마놀린이 될것
이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진실된 공감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타인의 의지와 그로 인해 발현된 것들(취향, 선택)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예컨데, 나는 스포츠와 서브컬쳐에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것에 열정적인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다.
그들의 진심과 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누군가가 진심을 다했지만, 부조리로 인해 잘 되지 않았을 때, 그들의 진심과 의지를 인식하고,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나는 누군가의 진정한 마놀린이 된다.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 즉 의지가 되기도 한다.
마무리
지난 6개월은 정말 다양한 일이 있었고, 지쳐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쌓고, 그로 인한 생각들을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이 글은 경험을 먼저 작성하고, 이후에 결론이 나왔다. 도입부는 맨 마지막에 적었다.
결론을 도출한 후에 찾아보니 내가 생각하는게 완벽하게 실존주의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는 실존주의자구나.
노인과 바다의 일부를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