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회 구성원들과 나누고, 믿으며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간다.
서양에서 기독교가 질서의 확립에 큰 도움을 미쳤다면, 동양에서는 철학이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만드는 데에 기초가 되었다.
유교
가장 널리 퍼진 유교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A 하다. 그러므로 B 해야 한다는 구조로, 근거를 제시하고 이후 행동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제시된 행동은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평화와 화합을 가져오는 데에 기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유교의 “마음에서 나온 예”는 변질되어 탁상공론, 보이는 것만 중요한 예만이 중요해져 버렸다.
이렇게 변질된 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유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결국은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유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종교, 정치성향, 기업가치, 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 것 포함한 것이다.
책 장자의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그리고 외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항상 가져왔던 관점이 아닌, 더 넓은 관점, 나아가 도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시하는 장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도
이렇게 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들은 다름이 없고, 좋고 나쁨 또한 없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의 관점에서 보았기에 모든 것에 다름을 부여하고, 좋고 나쁨을 가른다는 말이다. 우리는 비슷한 두 가지 사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둘을 비교하며, 우열을 가린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관점에서 파생된 결론이다.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들의 쓰임은 달라지고, 좋고 나쁨이 달라진다. 더 큰 범위에서 보면 결국은 모든 것의 좋고 나쁨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물론의 주요 내용이다. 장자는 이 제물론을 통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노니는 삶, 소요유를 추구했다.
책을 읽으며, 장자는 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자유를 추구했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나는 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도를 얻어 완전히 자유롭게 노닐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도를 사용하여 사회를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과열, 변질되어가는 관점과 생각들을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고 인식하고, 그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된다. 또한 다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환기해 갈등을 잠재울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 간의 갈등을 완화하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즉 가치를 만듦으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사회를 질서 있게 만들어 가고 싶다. 모든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제때 제때 필요한 관점들을 꺼내 사용하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현대사회는 혼란스럽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쟁의 위협이 커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단절이 일어나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을 때라고 생각한다.